시각장애인용 전자도서 제작에 관한 단상

2015년 여름, 봉사활동을 알아보고 있던 나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전자도서를 제작하는 활동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실로암복지관에서 모집하는 일반전자도서입력봉사에 몇 개월 간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때 시각장애인용 전자도서를 제작하던 도중 떠오른 몇몇 생각들을 이 글에 옮겨보고자 한다.

몇 해 전 트위터에서 ‘국내 음원사이트 업계는 음원을 받을 때 배급사를 통한 경로로 받지 않고 직접 CD를 리핑해서 음원을 추출한다고 들었다’는 트윗을 읽은 적이 있었다. 나중에 이에 관해 자세히 찾아보니 이러한 내용은 사실이 아니었지만1, 이를 알기 전까지는 제작사나 배급사와 계약을 맺음에도 불구하고 손수 CD를 리핑해서 음원을 얻는다는 방식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매우 흥미롭게 느껴졌었다.

그러나 이러한 비효율적인 방식이 실제로 사용되는 곳이 있었다. 바로 시각장애인용 전자도서이다. 먼저 시각장애인용 전자도서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텍스트로 데이터화된 도서를 ‘텍스트 음성 변환(text-to-speech, TTS)’ 시스템으로 음성으로 변환한 뒤 이를 시각장애인에게 청각적으로 들려주는 방식이다. 그리고 앞서 말한 ‘시각장애인용 전자도서 제작 봉사’는 시각적인 문자 기호로 이루어진 종이책을 사람이 읽어들여 이를 컴퓨터에 타이핑함으로써 텍스트 데이터로 변환하는 일을 말한다. 즉, 시각장애인용 전자도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데이터화된 텍스트이고, 복지기관은 이러한 텍스트를 구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어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 나는 여기에서 의문점이 생겼다.

“현대의 작가들은 책을 출판할 때 컴퓨터에 타이핑함으로써 원고를 작성하고 이러한 텍스트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을 텐데, 왜 이를 바로 건네주지 못하고 종이에 인쇄한 뒤 복지관에서 이를 다시 텍스트화하는 이중 변환 과정을 거처야 하는 것인가?”

이에 대해 저작권법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복지기관의 시각장애인용 점자도서 제작은 저작권법 제33조에 의해 보호받고 있으며, 한국이 2015년 10월 마라케시 조약에 가입함으로써 이러한 도서의 포맷에 대한 제한도 둘 수 없게 되었다. 다시 말해 저작권법을 위반하는 행동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출판사는 법에 의해 도서 제작을 보호받는 기관에게 텍스트화된 도서를 제공하지 않는 것일까? 그에 대한 해답은 블로터닷넷의 기사를 통해 알아낼 수 있었다.

“사실은 최근 몇 년 사이에 나온 책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출판사가 디지털판으로 파일을 갖고 있습니다. 오디오북이든, 전자책이든, 또 다른 형태의 것이든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꺼리는 건 유출 때문입니다. …… (후략).”

- 박영률 커뮤니케이션북스 대표

출판사가 디지털판 도서를 배급하기 힘든 이유는 유출의 위험 때문이라고 한다. 출판 업계에서 이러한 입장을 내놓는 것은 당연하다. 영화나 음악에 비해 상대적으로 파일 용량이 작은 텍스트는 유출이 더 쉬울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출판업계가 간과하는 것이 있다. 복지기관에서 전자도서를 자체적으로 제작하다 보면, 저작물이 유출될 위험성이 더 크다. 실제로 전자도서 제작 봉사 도중 ‘이러한 방법으로 전자도서가 제작되면 개인에 의해 온라인에 배포되어 유출될 위험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복지관에서도 이를 알기에 제작된 전자도서를 유출해서는 안 된다는 약관을 명시해 놓았지만, 주요 자원봉사자들이 학교에서 할당된 봉사시간을 채우기 위한 청소년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러한 약관은 어겨질 가능성이 충분하다.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 출판사가 자사의 디지털판 도서를 장애인복지관협회 등의 한 곳의 기관에 제공하도록 하고, 협회는 이를 총괄하여 장애인에게 배급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장애인들이 기관을 통해 시스템에 접속해 도서 저작물을 읽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시스템을 통해 출판사는 도서 유출의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고, 복지기관은 자체적으로 전자도서를 관리하는 비용을 줄일 수 있으며, 최종적으로 시각장애인들은 방대한 전자도서 시스템을 이용함으로써 현재보다 더욱 다양한 도서에 접근할 수 있다. 현재 시각장애인들이 접근 가능한 도서는 고작 전체 도서의 5%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2 이것의 이유에는 디지털판 도서를 제공받지 못한 복지관들이 전자도서를 자체적으로 제작하는 데에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든다는 점이 한 몫 할 것이다. 출판사가 약간의 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현재의 시각장애인용 전자도서 제작 과정을 개선할 방안을 모색하고 지원한다면, 이를 통해 사회 복지에 기여하며 결과적으로 독서 문화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길이 될 것이다.

  1. 하지만 제작사가 배급하지 않은 음원의 경우에는 실제로 음원사이트가 직접 리핑하여 업로드한다고 한다. 일례로, 이러한 리핑 방식으로 인해 프라이머리의 CD-only 트랙이 음원사이트에 유출되는 해프닝이 있었다. 프라이머리 음원 또 유출 “악의적인 발상” - 한국일보, 2012. 11. 14. 

  2. 마라케시 조약과 장애인의 ‘책 읽을 권리’ - 블로터닷넷, 2014. 06. 15.